나쁜 과일 / 캐슬린 라이언 인식을 뒤흔드는 나쁜 과일들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짓무른 과일은 낯설지 않죠. 과일은 상하기 마련이니까요. 썩은 과일을 아름답다고 인식하기는 어려워요. 우리의 인식은 의외로 견고해서 한번 생긴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여기 ‘썩은 과일’을 주목하게 만드는 작가가 있어요. 1984년 미국 출신의 캐슬린 라이언(Kathleen Ryan)이 그 주인공이에요. 캐슬린 라이언이 제작한 ‘썩은 과일’ 시리즈는 실제보다 몇 배 과장한 크기의 썩은 과일을 재현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형태로요. 독일 함부르크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쿤스트할레’에서는 캐슬린 라이언 기획전이 진행 중이에요. 이미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인정받은 ‘Bad fruites’ 시리즈는 독일에서도 주목받고 있어요. 멀리서 얼핏 보면 썩은 과일이지만 가까이 보면 곰팡이는 젬스톤으로 되어있어요. 자수정, 석영, 호박, 진주, 오팔 등 썩은 과일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광물과 원석을 사용하고 있죠.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카트에 가득 담긴 체리들을 볼까요? 빨간 형태와 꼭지를 보면 체리가 분명하지만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상태의 체리는 아니에요. 하얗거나 푸르스름하게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어요. 낚싯대로 길게 표현된 꼭지들이 접근을 막고 있지만 유심히 관찰하면 정교하게 젬스톤으로 표현된 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체리를 상온에 오래 두면 볼 수 있는 그 형태 그대로죠. 자연상태의 체리는 빠르고 쉽게 부패 되지만, 작가의 체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걸려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체리 특유의 광택을 살리기 위해 작은 젬스톤을 하나하나 심었고요, 짓무른 부분과 썩은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색의 원석을 세밀하게 선별해서 색을 표현했어요. 썩은 체리가 우리의 인식을 흔드는 순간이에요. 다른 과일을 볼까요? 마치 길바닥에 내동댕이 친 것 같은 수박이에요. 몇 조각으로 부서져서 흩어져 있죠. 실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가 꼬일 것 같은 상한 수박이에요. 실재감을 주는 색과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수박의 표면도 하나하나 젬스톤을 붙여서 표현했죠. 그리고 그 위에 벌레들이 앉아있어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을 부분까지 현실감을 더했죠. 아이러니는 여기서 일어나는 것 같아요. 형태는 익숙하고 묘사는 디테일한데, 소재의 특이성 때문에 머릿속에 반전이 일어나요. 아름다운 과일인지, 나쁜 과일인지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면서 모순에 직면한다고 할까요? 캐슬린 라이언의 과일 시리즈 작품들은 소재 선택이 탁월해요. 다양한 종류의 젬스톤은 물론 캠핑카를 해체한 부품이나 플라스틱, 유리, 콘크리트 등을 자유롭게 믹스하거든요. 나쁜 포도(Bad Grapes) 작품에서는 포도 줄기를 주철과 황동을 사용하고 포도알은 콘크리트로 제작했어요. 포도는 시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껍질은 거의 대부분 천연 크리스털 보석이나 진주 등과 같은 원석으로 표현했어요. 가장 시든 부분을 가장 값비싼 보석으로 표현한 것이 탄성을 자아내는 지점이고요. 캐서린 라이언의 과일 시리즈를 보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아트의 시작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티스트의 다른 관점과 표현력이 있기에 우리의 인식이 고정되지 않고 탄력과 긴장이 생기는 것일 테고요. 도시의 맥락 읽기,마블로켓 어반 리서치 +Editor's Pick : 사물의 뒷모습 / 안규철 저 저자는 '사물의 뒷모습'이라는 주제로 사물의 형태와 그 이면에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사유하고 있어요. 그는 사물의 뒤편에는 훨씬 깊고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죠.이를테면 나무에 대해서는, '저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을 먼저 차지해 더 많은 잎사귀를 내려고경쟁하는 가지들의 다툼을 중재하고 방향을 조정하고 잘못된 것은 미련 없이 쳐낸다.(...) 나무의 미덕은 인내와 여유로움만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말 없는 실천에 나무의 미덕이 있다.나무라는 사물의 이면에는 그런 치열한 고민이 있다는 것을.'라고 말하죠.사물의 뒷모습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관점으로 본 또 다른 뒷모습들을 만나보세요. 카카오톡 친구추가로 매주 목요일 노트를 받아보세요!https://pf.kakao.com/_xfQxbpxj/friend 레퍼런스&이미지 출처:https://www.kathleen-ryan.com/https://www.hamburger-kunsthalle.de/ausstellungen/kathleen-ryanhttps://rosa-schapire-kunstpreis.de/#kuenstler-2https://elephant.art/kathleen-ryan-mouldy-fruit-and-swelling-abundance/https://www.instagram.com/katieryankatier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