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들의 공동묘지 로맨틱하고 예술적인 파리는 여행자들에게 선망의 도시죠. 그런데 여행의 고수로 통하는 김영하 작가가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페르 라셰즈’, 바로 도심의 공동묘지라고 해요. 여행의 정석을 벗어나는 이 작가는 파리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묘지를 방문한다고 하네요. 도시 소음에 지칠 때 묘지만큼 고요하고 조용한 곳은 없다는 게 그 이유고요. 전 세계 묘지를 찾아가는 김영하 작가에게도 파리의 페르 라셰즈는 ‘인생 묘지’이라고 해요. 페르 라셰즈는 최초의 공원식 묘지에요. 1804년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 브롱냐르는 ‘죽음에 고통받지 않는 정원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대요. 당시에는 규모도 작았고 도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지금은 해마다 35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어요. 이제는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처럼 파리의 여행 동선에 포함되는 곳이라고 할까요? 페르 라셰즈는 어마어마한 규모, 죽음 사이를 걷는 듯한 고즈넉한 산책로로 유명하죠. 그러나 페르 라셰즈가 인기 있는 것은 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유명인들의 묘소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일 거예요. 쇼팽, 오스카 와일드, 발자크, 모딜리아니, 프루스트, 짐 모리슨, 에디트 피아프 등이 이곳에서 영면하고 있으니요. 록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리드 싱어였던 짐 모리슨은 불과 27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어요. 그의 사망 50주기였던 2021년에는 전 세계 팬들이 페르 라셰즈로 모였죠. 생전에 파격적인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로 유명했던 짐 모리슨의 묘소에는 차분한 비석이 세워져 있어요. 그를 잊지 못하는 추모의 꽃들이 묘소에 놓여있을 뿐이에요. 준수한 외모와 달변가로 알려져 있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묘비는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어요. 언제부터인가 묘비 위에 키스 세례가 쏟아 지금은 유리벽으로 보호하고 있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영국에서 추방당한 후 46세에 파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어요. 짐 모리슨의 묘지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 페르 라셰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묘소를 볼 수 있어요. 삶의 형태가 다르듯 죽음의 형태도 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요. 페르 라셰즈는 파리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에요. 쇼팽과 짐 모리슨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안치된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파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끝없는 묘소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보물 찾기를 하듯 갑자기 낯익은 이름을 만나기도 해요. 기웃기웃하다가 ‘고리오 영감’을 쓴 작가, 발자크의 청동상을 만나면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신기하고 반가울 것 같아요. 쇼팽의 묘지 발자크의 묘지 이브 몽탕의 묘지 차분하고 낭만적인 페르 라셰즈는 프랑스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반영하고 있죠. 엄숙한 추모의 공간보다는 건강한 교감의 공간으로 통하니까요.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죠. 공동묘지를 산책하면서 죽음이 아닌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이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일 테니까요. 불길하고 음산하거나 무거운 기운을 주는 묘지보다는 인생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묘지. 페르 라셰즈를 아주 천천히 걸어보고 싶네요. 도시의 맥락 읽기, 마블로켓 어반 리서치 +Editor's Pick : 적당한 거리의 죽음 / 기세호 ‘묘지란 점진적인 이별을 위해 세심히 고안된 장소다' 저자의 말이에요. 이 책은 서울과 파리의 공동묘지를 비교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우리가 기피하는 공동묘지라는 시설을 파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 ‘죽음’에 대해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카카오톡 친구추가로 매주 목요일 노트를 받아보세요!https://pf.kakao.com/_xfQxbpxj/friend 이미지 출처:www.paris.fr/dossiers/bienvenue-au-cimetiere-du-pere-lachaise-47www.flickr.com/photos/erke86joc/15801945895www.parisladouce.com/2020/04/paris-tombe-doscar-wilde-au-pere.htmlwww.findagrave.com/memorial/198/fr%C3%A9d%C3%A9ric-chop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