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비전 2022 코리아 전시 코로나 이전과 이후, 나부터 환경이슈에 대한 온도차가 확실히 커졌다. 예전에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면 생활방식으로 체감된다고 할까? 나까지는 나빠진 환경을 버틴다 하더라도 분명 우리 아이들이나 그 다음 세대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생겼다. 최근 친환경 이슈를 체감형으로 풀어낸 전시에 다녀왔다. ‘농’을 테마로 한 2022 코리아 하우스비전이다. 하우스비전은 미래의 주거환경, 주거방식을 논의하기 위해 모든 산업의 교차점인 집을 다양하게 풀어낸 풀어낸 전람회다.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였고 현재는 니폰디자인 센터의 대표인 하라켄야가 2011년 시작했다. 일본, 중국, 대만에서 열렸던 하우스비전이 4회인 올해는 충북 진천에 있는 root square를 무대로 정했다. 개최파트너인 MANNA CEA(만나 씨이에이, 이하 만나CEA)가 전시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root square는 스마트팜 솔루션기업인 만나CEA가 구축한 복합공간이다. 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가 접목된 ‘아쿠아포닉스’에 ICT를 결합한 스마트팜 친환경 농장을 운영하는 만나CEA는 농장에 주거와 F&B, 문화까지 더해 스퀘어라는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 root square에 크리에이터와 건축가들이 미래의 농촌생활을 고민하며 다양한 주거 해법을 제시했다. 진천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검은 숯 덩어리로 만든 거대한 쌀알 모양의 작품과 해설을 보고서야진천의 특산물이 흰쌀과 검은 숯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우스 비전의 첫인상으로 좋았다. 우리는 어디에 살든 로컬의 풍토와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니까. 짚단으로 연출한 소품들도 친근했다. 스태프가 동선을 알려주긴 했지만 체크인과 동시에 동선은 흐트러졌다. 장인들의 섬세한 공예품에 눈이 갔다. 손으로 마무리했을 주걱, 뮤지엄에 있어도 좋을 찻잔과 주전자 등 정교한 식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농은 ‘식’으로 연결될 수 밖에. 주제와 연동시킨 식기의 큐레이션을 감상하고 본격적으로 공간을 탐색했다. 우아한 형제들과 협업한 ‘100% 키친’은 자급자족과 자원의 선순환을 체감할 수 있는 미래형 식당이다. 장어를 양식하는 동시에 장어가 배설한 유기물로는 느타리 버섯를 재배하는 등 순환형 시스템을 실현했다. 특히 부엌에서 발생한 음식쓰레기를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100% 재활용하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유리 온실 형태의 ‘컬티베이션 하우스(cultivation house)’는 하우스비전의 허브이자 가장 인기있는 공간이었다. 흙과 나무 부산물이 깔린 바닥,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 천장으로 들어오는 빛이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느낌이었다. 가장자리에 방석을 놓고 앉으면 평상 같기도 하고, 걸어 다니면 대청마루 같기도 한 공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열린 구조였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밖의 조경과 달리 컬티베이션 하우스는 고사리와 이끼같은 음지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준다. cultivation(재배 혹은 경작)과 culture(문화)는 ‘키우다’라는 의미의 cultivate를 공통 어원으로 가지고 있다. 농촌라이프에서 문화와 재배, 두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했다는 배경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미래의 농촌라이프는 노동집약적인 일을 하는 형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웃과의 연대, 지역 토착적인 문화를 키워내는 삶의 형태가 될 테니까. 하라켄야는 무인양품과의 협업으로 ‘양의 집’(plain house)을 선보였다. 거실과 정원이 이어지는 개방형 구조가 특징이었다. 논밭이 보이는 쪽에 미닫이 문을 달아 거실에서 발코니로 공간을 확장시켰다. 바퀴가 달린 테이블을 발코니와 실내에 반반 걸치도록 해서 실내이기도 하고 실외이기도 한 공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퀴 달린 테이블과 붙박이 가구들 외에 눈에 들어왔던 것은 ‘사방가구’ 형태의 침대였다. 침대의 헤드와 프레임을 변형시켜 작은 책상과 스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인 가구였다. 발코니의 나무 덱(deck)에 서서 파노라마로 바라본 농가 풍경이 좋았다. ‘양의 집’의 정원에는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텃밭이 있었다. 자급자족의 터이자 조경이 되는 정원이다. 작은 집 두 채는 집이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싶을 만큼 초소형이었다. 그러나 책상만 간신히 놓인 2층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니 이 공간에는 책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상과 명상, 침묵과 집중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전이었다. 동마다 좁은 간격을 두고 서있는 서울의 아파트를 떠올렸다. 주거공간 30평 아니 50평의 아파트에서도 가질 수 없는 뷰. 이곳에서는 1평의 방에서 100평의 뷰를 가질 수 있다. 하우스비전 전시를 나서며 새롭게 곱씹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이 아니라 태양빛이었다. 전시공간의 한 벽면에는 농업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태양광을 빌려서 식물의 힘을 통해 식량을 비축하는 것’. 마치 농업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것처럼 낯설면서도 명확해서 눈으로 밑줄을 그었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태양빛이 얼마나 큰 에너지원인지, 집이라는 구체적인 구조 안에서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태양빛은 모든 순환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 우리도 결국은 태양빛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유기체라는 점. 생명을 유지하기 농업도 그 시작은 태양빛일 수밖에 없다는 점. 머릿속에서 잠자고 있던 상식이 비로소 활성화되는 느낌이었다. 엉뚱하게도 하우스비전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도시 거주민들은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더 넓게’라는 한 방향으로 달려간다면, 미래의 농촌에서는 태양빛을 얼마나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것이다. LED보다 태양빛과 가까운 생활, 태양빛을 더 투자하고 활용하는 생활이 왜 더 스마트하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일까? 나는 아무래도 하우스 비전이 아니라 태양빛의 비전을 보고 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