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현 미술관에서 만난 쿠마켄고의 생각 건축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일본 건축가들이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으로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구축한 안도 다다오가 대표적이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전공한 적도 없고 스승을 둔 적도 없다. 복서처럼 외롭게 건축과 승부하다가 출입구만 있는 콘크리트 주택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건물의 내외장을 콘크리트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에 끌렸던 것이 시작이었지만,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콘크리트는 그의 시그니처 소재가 되었다. 비판과 허들을 뛰어넘고 자기주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안도 다다오는 단단한 콘크리트를 닮았다. 안도 다다오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쿠마 켄고와 대립항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쿠마 켄고는 20세기를 콘크리트의 시대로 정의하고 콘크리트 건물을 강하고 권위적인 건축이라고 말한다. 쿠마 켄고는 자연스러운 건축을 추구한다. 그가 강조하는 자연스러운 건축은 자연소재를 사용한 건축이라는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맺는 건축이다. 그래서 쿠마 켄고는 지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자연과의 연결성을 추구하며, 지역의 장인들과 일하기를 좋아한다. 장소 자체를 디자인한다고 할까? 왜 당신의 건축 주제는 자연인가라는 질문에 쿠마켄고의 대답은 이렇다. “311 대지진을 비롯해서자연의 엄청난 힘을 경험하고 나니 결국 건축은 자연 앞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자연에 맞서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지향하게 된다” 그의 건축은 ‘약한 건축이라는 키워드로 함축된다.쿠마 켄고가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인간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건축을 한다, 동료와 함께’.그는 돌, 대나무, 종이 등 지역의 친밀한 소재를 찾아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건물을 짓는다. ‘약한 것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살아남는다’는 그의 신념. 바로 약한 건축의 역설이다. 일본 나가사키로 가보자. 나가사키항 부근에 유리로 된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쿠마켄고가 설계한 나가사키현 미술관이다. 같은 크기의 유리 건물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마치 미술관이 운하를 품고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 쿠마켄고는 운하를 건축의 방해요소로 보지 않고 미술관 설계에 적극 활용했다.나가사키현 미술관은 ‘미즈베노모리’ 공원 위에 있는데,미술관 꼭대기 층의 옥상정원은 수변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지형과 건물이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건물의 유리에 비친 하늘과 구름은건물에 자연을 입힌 느낌이다. 미술관은 수직의 모던한 이미지로 서있으나자연과 공존하고 있어서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가사키현 미술관에는 일본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많지만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등의 스페인 미술품으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대사였던 스마야키 치로가 수집한 ‘스마콜렉션’을 포함해서 1천2백점의 스페인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가장 큰 작품은 역시 미술관 자체다. 전시된 작품을 다 본 뒤에는 입구가 아닌 수변공원 쪽에서 미술관을 보는 것도 놓치지 말자. 자연과의 일체감이 훨씬 더 잘 보인다. 하늘, 둔덕, 운하와 함께 쿠마켄고의 ‘자연스러운 건축’은 이렇게 자연과 호흡하고 있다. <마블로켓매거진 나가사키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