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사 워크숍 #4 결국 올 것이 왔습니다. 2개월에 걸쳐 진행된 교토 워크숍의 마지막 날이거든요. 오늘의 주제는 일본의 일상 속 ‘계절감’입니다. 교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인 ‘치쿠린’입니다. 울창하게 자란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곳이에요. 교토를 몇 번이나 다녀온 A님에게 치쿠린에 대한 감상을 물었습니다. 지독하게 덥고 습한 8월의 날씨를 잊게 만드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블로켓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며 걸었지만, 아침 7시면 한적한 치쿠린을 볼 수 있다는 팁도 주었고요. 치쿠린 외에도 가츠라 강을 가로지르는 ‘도게츠교’도 아라시야마의 명물입니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낭만적인 이름이죠.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나룻배는 엽서 같은 풍경이고요. 아라시야마의 ‘텐류지’는 멋진 정원으로 유명합니다. 바깥의 경치를 빌려 온다라는 뜻의 ‘차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차경은 방장에서 담장 밖 산, 숲, 폭포 등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일본의 전통적인 조경 기법입니다. 원하는 풍경만을 창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둔 느낌이죠. 우리나라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는 B님은 겨울 여행지들을 일괄 정리해 주었어요. 단연 평창이라는군요. 특히 발왕산은 설경과 케이블카로 유명한데요, 국내 최장길이의 케이블 카(왕복 7.4km)를 타고 내려다보는 설경은 나무에 얼어붙은 눈(상고대)이 산호초처럼 보인다고 해요. 예전 삼양목장으로 불렸던 삼양 라운드힐은 대관령 목장과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데다가 눈꽃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 외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고석정, 물윗길 등을 겨울에 놓치기 아까운 풍경으로 소개해주었어요. 발왕산 설경 삼양 라운드힐 A님은 통영의 다도해 풍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해 질 녘 다도해를 내려다보며 한국의 수묵화가 이런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통영국제음악당 이야기로 C님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통영국제음악당은 건축물로도, 공연으로도 유명하죠. D님은 매년 봄에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퀄리티에 감탄하며 가 볼만하다고 추천했어요. 그 외 전주의 전통문화전당에서 여름에 열리는 세계 전통 공연은 월드 뮤직을 경험할 수 있는 고품격 프로그램이라는 솔깃한 정보까지 덤으로 제공해 줬어요. 통영국제음악당 다시 산으로 이야기가 돌아왔어요. 초록이 가득한 산도 좋지만, 겨울산이 제대로라는 이야기에 여럿이 공감했어요. 헐벗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촘촘히 나무로 채워진 겨울산은 또 다른 감동을 불러일으키죠. D님은 핀란드에서 온 지인 부부의 에피소드를 얘기했어요. 3년간 한국에 머문 이 부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너희는 너희의 산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그러고 보니 동네마다 보이는 예쁜 산들을 너무 당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A님은 종묘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북한산 능선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크 게리도 서울에서 보이는 산의 능선에 대해 감탄한 적이 있었죠. 종묘를 둘러보며 건축과 자연과의 관계가 인상적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경복궁 설경 순창에서 자란 E님에게 서울을 상징하는 곳은 광화문이라고 했어요. 이순신 동상과 세종문화회관 일대의 풍경은 ‘서울에 왔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라고 하네요. 서울을 브랜딩을 할 때 주요한 타깃이 ‘외국인들과 서울을 동경하는 지방러’라는 B님 말에 모두가 웃었습니다. E님은 순창에서 유명한 곳으로 강천산 군립공원을 소개했어요. 기암절벽, 울창한 숲, 계곡이 어우러진 명산이라고 합니다. 가울에 단풍으로 유명하고, 병풍 폭포와 구장군폭포 등도 볼 만하고, 맨발 산책로도 강조했어요. 순창의 명물인 매일통닭을 계곡에서 먹는 맛이 그만이라고 합니다. 순창에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아요. 강천산 군립공원 F님은 2인조 밴드인 노리플라이(NoReply)의 멤버 정욱재(TUNE)를 머물기 좋은 계곡을 리스트 하는 환경음악가로 소개했어요. 찾아보니 바다 환경에 대한 곡인 ‘OCEAN’ '고래의 삶과 죽음' 등의 노래를 통해 환경 보호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션이네요. 이야기는 다시 원래의 트랙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교토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교토에서 로컬, 자연, 계절로 주목할 만한 브랜드 3가지를 소개했어요. 첫 번째는 스노우피크 랜드스테이션이에요. 보통의 매장과 달리 랜드스테이션 매장은 ‘쥬바코(나무 찬합)’라는 캠핑카에서 숙박 경험을 할 수 있죠. 쥬바코는 구마겐고와 협업한 이동식 차량이에요. 100년 된 주점을 리모델링한 스노우피크 아라시야마 점은 볼 것이 많아요. 다다미 방과 붙박이장(오시이레)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제품들은 모던한 매장에서 보던 제품들과 다른 아우라를 갖죠. 쥬바코 / 구마 겐코 설계 D님은 높은 등급의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비매품 때문에, 스노우피크를 좋아하면서도 약이 오른다고 했어요. 실제로 스노우피크는 로열티가 높은 고객들에게 리워드(노벨티)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찾아보니 2025년 노벨티는 지역 양조장과 협업하여 제작된 술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포인트 누적에 따라 화로대, 의자, 특별한 행어 등의 기프트를 제공하는 브랜드죠. 캠핑을 즐겨 다니는 사람들을 예우하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고요. 두 번째로 소개한 브랜드는 굿네이처 호텔이에요. 굿네이처 스테이션이라는 복합 건물 안에 호텔은 물론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를 실천할 수 있는 마켓이 있는 친환경 브랜드예요. 여기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로비층에 있는 커다란 중정입니다. 실내에 있는 정원을 중정(나카니와)이라고 하는데요, 하늘이 뻥 뚫린 중정에는 중앙 화로와 덩굴식물, 리클라이너 의자가 있어서 자연 친화적인 쉼을 경험할 수 있어요. 굿네이처 호텔 세 번째로 소개한 브랜드는 ‘디스이즈시젠’(This is SHIZEN)이에요. 에이스호텔과 연결되어 있는 신풍관 몰 안에 매장이 있어요. 시젠은 자연이라는 뜻의 일본어예요.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자연’이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죠. 이곳의 베스트셀러는 꽃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에요. 앙금으로 한 장 한 장 꽃잎을 만들어, 꽃 아이스크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요. 수국이 제철일 때는 수국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으니 이곳도 계절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죠. 아이스크림보다 더 소개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끼볼(고케다마)로 만든 식물이에요. 뿌리를 흙으로 뭉치고 이끼를 감싸서 실로 고정시키는 이끼볼은 그 자체로 정원이자 자연을 뜻해요. 축소지향의 일본, 불완전한 상태의 와비사비로도 충분하다는 일본의 정서가 담긴 식물이죠. 일본의 탐미적인 성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어요. D님은 일본을 상징하는 단어로 ‘춘설’을 이야기했어요. 춘설은 곧 녹아 없어지죠. 일본은 그 찰나, 순간의 정서를 중요시하는 게 아닐까요? 계절을 즐기는 것도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감정이 들어있을 수 있고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제철을 즐기는 리추얼들이 많죠. 사사메유키의 장편소설인 <세설>은 오사카의 네 자매 이야기인데요, 벚꽃놀이부터 불꽃놀이인 하나비, 반딧불 놀이까지 제철마다 이때는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G님은 교토의 기온마츠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어요. 기온마츠리는 교토의 야사카 신사에서 7월 한 달 열리는 일본의 3대 축제 중 하나죠. 역병 퇴치를 위해 시작된 마츠리는 1000년 이상 계속되고 있어요. 교토는 자연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식지 않는 것 같아요. 봄에 가면 ‘가을의 교토는 얼마나 예쁠까’ 기대하게 되고 여름에 가면 겨울의 교토를 기대하게 되니까요. 우리는 좋은 것에 화전민처럼 움직였다가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질리도록 소비해 버리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고 보면 교토는 도시적이면서도 자연의 균형감을 잘 유지하고 있는 도시라는 인상을 풍기죠. F님은 교토가 웰니스 도시냐에 대한 화두를 꺼냈어요. 교토는 상업적이고 다분히 관광지의 형태죠. 그러나 가장 오래 지속되고 나지막한 이끼가 주는 풍경, 언제 찾아가도 그대로인듯한 정적인 모습, 장인들이 보여주는 슬로우 라이프가 느린 도시, 균형 잡힌 도시, 웰니스의 이미지를 발신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오늘 워크숍의 마지막이자 교토 워크숍의 마지막은 하이쿠로 정했습니다. 하이쿠야말로 계절감을 응축시킨 일본 전통의 서사니 까요. 하이쿠는 5-7-5의 정형성을 갖는 17자의 짧은 시이지만 여기에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는 정서가 녹아 있어요. 자연에 투영해 볼 수 있는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거든요. 장맛비 내리자 물가에 서 있는물새의 다리가 짧아지네 3대 하이쿠 작가인 바쇼의 하이쿠예요. 장맛비가 불어나 물새의 다리가 물에 잠긴 풍경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 줄에 불과한 시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그 속에서 날아가지 못하고 물에 점점 잠기는 새 한 마리가 보이는 듯해요. 한 컷의 장면이 아니라 씬으로 느껴지죠. 너무 울어텅 비어 버렸는가이 매미 허물은 바쇼의 또 다른 하이쿠예요.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그렇게 여름 한철을 보내고 후드득 떨어진 허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고요. 인생의 덧없음, 허망함이 밀려오죠. 이 숯도 한때는흰 눈이 얹힌나뭇가지였겠지 또 다른 시인인 타다토모의 하이쿠예요. 청년이었던 초록의 나뭇가지, 그리고 눈을 매달고 있는 노년의 나무, 검은 숯이 되어버린 나무의 일생이 영상처럼 지나가는 듯해요. 노년이 된 누구나 한때의 영화가 있었던 것처럼, 화양연화를 떠올리게 하는 하이쿠입니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어, 다시 올라가네나비였네! 봄이 오고 있으니 봄의 하이쿠를 마지막으로 소개할게요.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느릿한 속도로 꽃잎들이 떨어지는데 순간, 거슬러 올라가는 꽃잎에 시선이 머물게 되죠. 자연의 대비, 물아일체 같은 감성이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