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직진할게요. 긴 여행을 떠난 지인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곳은 화장 시설이에요. 매장 대신 화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90%를 넘어선 만큼 화장은 일반적인 장례방식이 됐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화장시설은 전국에 60여 군데 밖에 없어요. 그중에는 10년,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낙후된 시설도 많아요. 몇 년 전, 영면에 드신 분을 추모하러 화장시설에 갔다가 적막한 분위기에 우울했던 적이 있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을 거예요. 화장시설은 꼭 누추하거나 근엄하기만 해야 할까요? 이런 의문을 해결해 준 사람이 있어요. 일본 건축가, 이토 토요(Ito Toyo)에요. 2013년 프리츠커 상을 받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프로젝트를 하는 거장이에요. 건축과 주변 환경의 유기적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죠. 이토 토요가 2018년 설계한 ‘순환의 숲’은 죽음을 고립시키지 않고,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고려한 화장 시설이에요. 화장시설은 ‘내 앞마당에는 안돼’를 뜻하는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의 대표적인 예죠. 공공시설로는 필요하지만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는 것은 꺼리니까요. 바로 ‘순환의 숲’이 위치한 곳이 한 번 더 눈길을 끄는 이유예요. 순환의 숲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연계된 큰 공원 안에 있어요. 일본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와 도시공원을 연결한 곳을 ‘하이웨이 오아시스’(Highway Oasis)라고 하는데요, 호수와 녹지는 물론 지역 박물관과 어린이용 놀이시설 등을 갖춘 ‘이이나 파크’ 안에 화이트 톤의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순환의 숲’이 있어요. 야외 놀이터 Ⓒkawaguchi-highwayoasis 고속도로 휴게소와 연계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높고, 넓은 부지의 공원 안에 있어서 화장 시설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아요. 어린이들을 위한 야외 놀이터와 실내 놀이시설을 갖춘 것도 화장시설을 이용하는 조문객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요. 지붕과 기둥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화이트 톤의 구조는 죽음을 절망으로 몰지 않고, 남겨진 이들에게 밝은 기운을 주는 듯해요. 건물 앞의 연못은 차분하게 죽음을 수용하고 마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연요소에요. 내부에서도 고요한 물을 응시할 수 있고요. 화장시설이 기피 시설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은 가와구치시의 역사자연관과 로컬상품을 판매하는 지역물산센터, 로컬 식자재를 활용한 레스토랑이에요. 순환의 숲과 연결감 있도록 지역물산센터와 역사자연관도 이토 토요가 설계했어요. 세계적인 거장의 건축물은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공원 이용률을 높이고, 장례를 삶의 연속성에서 바라보게 하죠. 역사자연관 Ⓒkawaguchi-highwayoasis 지역물산센터 Ⓒkawaguchi-highwayoasis 레스토랑 Ⓒkawaguchi-highwayoasis 만약 화장 시설과 로컬 식자재를 판매하는 마켓 등이 제각각 어수선하게 있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을지도 몰라요. 바로 건축가의 안목과 미감이 중요한 이유죠. 누가, 어떻게 이 시설들이 어우러지게 설계하고 마감할 것인가는 엄청난 차이니까요. 그러나 화장 시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건축가에게 기댈 수는 없죠. 장례 문화에 대한 공론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숙하고 유연한 자세도 필요하고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에세이에서 저자인 김영민 교수가 말했듯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방법이니까요. 도시의 맥락 읽기,마블로켓 어반 리서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저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번잡한 일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져요. 우선순위도 명확해지고요. 책의 저자 역시 '죽음'을 통해 '더 잘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학교, 사회, 대화 등 일상의 사례 속에서 좋은 질문을 던져주고요. ‘죽음이라는 인생의 스포일러’는 우리의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드는 필수 장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카카오톡 친구추가로 매주 목요일 노트를 받아보세요!https://pf.kakao.com/_xfQxbpxj/friend 레퍼런스&이미지 출처:https://www.kawaguchi-highwayoasis.com/http://www.toyo-ito.co.jp/WWW/Project_Descript/2015-/2015-p_10/2015-p_en.html